컴퓨터 / IT

My PC Story (2)

드라이빙필 2008. 7. 11.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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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학년 때(91년)는 꿈에도 그리던 My PC를 소유하게 되었다. 2학년 겨울방학 때 고향에 내려가 있다가 아버지께 용기를 내어 말씀드렸는데 의외로 쉽게 허락을 해 주셨다. (사실 공부에 도움되는 것이 아니면 아버지께 불호령이 떨어지기 때문에 뭘 사달라는 말씀을 쉽게 꺼내지 못했다. ㅠ.ㅠ) 공부를 핑계로 설명을 드리긴 했어도 당시에 150만원이라는 거금이었는지라 쉽게 허락하실거라 생각치도 않았기 때문에 그 기쁜 마음은 아마도 지금 누가 쿼드코어 시스템을 준다고 해도 그 때만큼 기쁘지는 않았으리라.
 
마침 학교 선배의 사촌 형과 친하게 지내곤 했었는데 그 형은 용산에서 일을 하고 계셨으므로 친한 친구였던 동기 녀석과 함께 주문했었다. 그 PC의 스펙은 386DX-25, 4MB DRAM, 50MB 하드. 당시로서는 286AT가 주류를 이루던 시절이라 고급 컴퓨터에 속하는 것이었다. 광할한 메모리와 하드디스크의 공간은 무얼 담아도 다 채울 수 없으리라 생각되었다. 그리고 그 PC로 접했던 프린스 게임은 한동안 정신이 나가 있게 만들 정도였다. 비록 흑백이었지만 지금의 24비트 컬러보다도 더 화려한 그래픽이었다.

 

50MB 하드는 당시 유명했던 퀀텀 제품이었는데 속도가 빨랐고 쓰다 보면 가끔씩 "끼리리리리 철커덕"하는 재미있는 소리가 나곤 하는 물건이었다. 그 때 쓰던 DOS가 3.3이었는데 FAT12여서 32MB가 최대 파티션 크기였다. '하나로 포맷할 수도 없는 대용량이군'하고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파티션 두 개로 나누는게 맘에 안 들어서 DOS 4.0이 나오자 마자 업그레이드 하고 포맷을 다시 했었다. 지금도 왠만하면 파티션은 나누지 않는 습관이 있는데 요샌 하드들이 너무 커져서 부트 파티션 정도는 80GB로 나눠 쓰지만 작년까지만 해도 그렇지 않았다.

 

어쨌든 PC 덕분에 3학년 1학기의 성적은 좋지 않았다. 기숙사에 들어 오기만 하면 만지작 거리고 재밌는 게임에 빠져 시간 가는 줄 몰랐다. 특히 기억나는 건 프린스와 테스트 드라이브 3인데 프린스는 흑백 시절에 푹 빠져 지냈고 얼마 안가 VGA로 업글하면서 부터는 테스트 드라이브 3에 미쳐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렇게 열심히 한 게임이 없었던 듯 싶다. 기록이 1초라도 땡겨지면 얼마나 기뻐했던지... ^^


시험기간에도 가끔 했었고 시험보는 중간에도 머리 속에서 빠져 나오질 않았다. 덕분에 성적은 입학 이래 최초로 3.0을 넘지 못했고 이는 기숙사 재입사의 기준에 미달되었다. 교무처장이시던 학과 교수님을 찾아가 간곡히 부탁드려 간신히 재입사는 했는데 만일 그렇지 않았다면 고향 집에서 뼈를 묻었을지도 모른다. (공부하라고 사줬더니 그 지랄을!)

 

PC는 한 번 사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업글에 대한 욕망은 끊임 없이 내 가슴을 흔들어 놓았다. 없는 용돈을 모으고 모아 33MHz로 40MHz로 CPU를 바꿔 갔고 지금은 기본이지만 그 때는 옵션이었던 387(수치 연산 코프로세서)도 추가로 장착하였다. PSPICE라는 회로 시뮬레이션 소프트웨어에서 딱 한 번 써 먹어본 적이 있는게 다였으니 지금 생각해 보면 완전 미친 짓이었다. ㅋㅋ

 

비디오 카드도 흑백 허큘리스에서 ET4000 칩을 쓰는 VGA로 바꿨다. 그에 따라 컬러 모니터도 함께 바꿨는데 히타치 제품이었다. 당대 최고의 모니터는 누가 뭐래도 NEC 멀티싱크였지만 CAD 쪽에서는 히타치의 인지도도 꽤 높다고 했었다. 나중에 궁금해서 뒷 커버를 열어 보니 그 안에 철갑(일종의 전기적 쉴드인 듯 한데 구멍이 송송 뚫려 있는 섀시로 덮혀 있었음)을 두르고 있었다. 그걸 보고 참 감동 받았던 기억이 있다. 그러고 보면 별 걸로 다 감동받곤 했다. 그 만큼 순수했던 시절이라고 생각한다. 어렵게 산 물건들이었으니 어떻게든 좋게 보고 싶었다.


모니터에 달았던 보안기도 좋은 제품이었는데 TORAY라는 로고가 아직도 기억난다. 그 후로는 대학교 졸업할 때까지 업그레이드를 거의 하지 못했다. 돈도 돈이려니와 대학원 준비로 몸도 마음도 편치 못했기 때문이다. 1학년 때 스터디 모임에 참여한 이후 2학년 때 부터는 전자계산학과의 전공과목을 많이 들었다. 전기공학과였던 나는 전공필수를 제외하고는 최대한 전자계산학과의 과목을 수강했다. 대학교 입학할 때부터 대학원은 가기로 목표를 잡고 있었는데 그 때부터 서서히 전과를 결심하게 됐다. 전과를 하려다 보니 같은 과를 지원하는 것에 비해 많이 힘들었고 가장 친했던 친구와 사이가 멀어지는 일도 겪으면서 정신적으로도 힘든 나날들이었다.

 

어쨌든 우여곡절 끝에 대학원에는 무사히 입학하게 되었고 입학하기 전부터 들어 가고 싶었던 교수님의 연구실에 배속될 수 있었다. 한 전기과 학생이 학부 때부터 자주 눈에 띄었는데 그 놈이 자기 밑으로 오고 싶다고 하니 관심이 있으셨던 모양이었다. ^^ 사실 한 학기에 그 교수님 과목을 두 개나 들은 적도 있었다. 교수님의 말씀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어? 너 또 여기 왜 있냐?" ㅋㅋㅋ

 

대학원에 진학하면서 부터는 조교를 맡을 수 있었고 그로 인해 소액이지만 월급도 나오고 신용카드 영업사원들은 돌아 가면서 카드 만들어 준다고 다니니 쉽게 카드도 만들수 있었다. 월급은 그렇다고 쳐도 신용카드를 만드니 그동안 억눌러 왔던 지름신의 외침을 마냥 모른채 할 수는 없었다. 결국 할부를 동원해 업글을 감행하기에 이르는데...

<계속>

[2007-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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