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숙집에서 알게된 친구와 죽이 맞아서 신사역에 있었던 매장까지 갔다 와서는 CPU며 메인보드며 부품들이 머리 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이미 지름신은 뼈속까지 들어와 계신지라 그 분을 거역하지 못하고 10개월인지 12개월이지 기억이 잘 안 나는 데 하여튼 장기 할부로 200여만원을 들여 486DX2-66으로 업글을 했다. 그 당시 부품들이 무엇 무엇이었는지는 잘 기억나진 않는데 CPU와 메모리, 메인보드, 그래픽 카드 정도였지 않았나 싶다. 하드도 산 것 같은데 도통 기억이 나질 않는다. 여하튼 그 당시로서는 상당히 고성능 사양이었는지라 그 가격이 오히려 싼 가격이라고 생각을 했었고 사고 나서는 뿌듯한 마음도 가졌었다. (물건 잘 샀네.. ㅎㅎ)
486 시절부터 Local Bus 붐이 일었었는데 기존의 느린 ISA Bus를 대신하기 위해 CPU의 Bus를 직접 쓴다는 의미였는데 주로 비디오 카드에 사용되었다. 지금으로 치면 AGP나 PCI Express x16 슬롯 정도 되는... 그 당시 Local Bus라는 이름을 걸고 나왔던 것이 VESA와 PCI였는데 내가 샀던 것은 ATI mach32 VLB라는 VESA 방식의 카드였다. 지금은 사용되지 않는 고가의 듀얼 포트 VRAM까지 쓴 꽤 고급 제품이었다.
메인보드는 유명했던 마이크로닉스社 제품(Gemini)이었는데 안정성이 좋기로 정평이 있었다. 그 당시에 미국 제조사의 보드들은 고급 제품으로 통했고 실제로 대만 제품들은 안정성이 떨어지는 제품들이 많았는데 지금의 보드 안정성을 생각해 보면 그 때는 품질차가 컸었다.
이 메인보드는 BIOS를 플래쉬 메모리에 저장하는 보기 드문 것이었다. 지금은 당연한 것이지만 그 당시에는 EPROM에 저장하던 시절이었으니 BIOS를 업그레이드할 수 있다는 것으로도 자부심을 가질 수 있었다. 다만 무슨 기술이던 처음 적용되면 문제가 있듯이 이 것 또한 그랬는데 사용중에 몇 번 BIOS가 날라간 적이 있었다. 다행히 플로피 디스켓에 BIOS 이미지 파일을 넣은 채로 부팅하면 자동으로 복구해 주는 기능이 있어서 유용하게 사용했었다. 그러한 기능도 그 당시에는 대단하게 느껴졌었고 좋은 보드는 뭔가 달라도 다르다는 프라이드 마저 갖게 했었다. 그런 것이 명품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부품들은 거의 대부분 대학원 졸업후 취직해서도 얼마간 사용을 했었다. PC의 라이프사이클을 생각하면 오래 쓴 부품들이었으며 나중에 펜티엄으로 업글하면서 여친의 친구의 동생 PC로 다시 태어나기도 했다. 메인보드에 캐쉬 메모리가 꼽혀 있었는데 그게 새 케이스에 걸려서 얼마나 고생을 했던지.. 니퍼와 플라이어(뺀찌!)를 동원해 샤시를 조금 잘라내어 장착했었다. 휴~ 여하튼 이 부품들은 내 PC 역사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들이다.
대학원 시절에는 이러한 부품들 외에도 사운드 카드가 몇 번 바뀌었었다. 애드립이라는 멜로디 음원을 가진 사운드 카드가 나오기 전까지 PC에서의 소리는 PC 스피커를 통해 만들어지는 음들이었다. 그 조악한 음을 듣다가 애드립의 멜로디를 들으면 음악 선율이 따로 없었다. 하지만 나는 AdLib은 접하지 못했고 그 이후에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던 사운드 블래스터로 눈을 돌리게 되었다.
내 첫 사운드 카드였던 사운드 블래스터 프로! 안타깝게도 사진을 찾을 수가 없다는.. ㅡ.ㅡ 386을 구매해 줬던 형에게 또 부탁해서 샀었는데 용산의 친구분께서 원가에 파는 걸 보고는 자선사업하냐고 농담했었다고 한다. 그렇게 싸게 샀는 데도 불구하고 20만원이 넘는 가격 (20만원 후반대였었나?)이었으니 비싸긴 비싼 물건이었다. 그걸 고집해서 샀던 이유는 바로 스테레오로 나오는 최초의 사운드 블래스터였기 때문이었다. 그 전까지는 모노 사운드였으니 그 차이가 어떠했으랴... 윙 커맨더에서 흘러나오는 호랑이 종족의 "엑설런트!" 음성은 머리에 각인이 되어 남아 있다. 그 소리 하나만으로도 흥분했던 시절이 그립다.
그 이후 프로 오디오 스펙트럼 16이라는 사운드 카드로 바꿨었는데 이것 또한 물건이었다. 음질도 좋았고 기능도 좋았었는데 내부에 사운드 블래스터 호환기능이 들어 있어서 사운드 카드가 두 개 있는 것처럼 쓸 수 있는 카드였다. 기판의 만듬새 또한 고급스러웠고 흔히 보기 힘든 빽빽한 부품 배치를 보고 있노라면 절로 입가에 미소가.. ^^ 당시의 사운드 카드들은 CD-ROM 드라이브 인터페이스를 내장하고 있었는데 이 카드에는 SCSI가 달려 있었다.
기능이 많은 만큼 특성을 타는지라 쓰기가 조금 불편했었는데 한 번 세팅하면 별 문제는 없어서 잘 사용했었다. 처음에 메인보드와 충돌이 나는데 원인을 알 수 없어 교환해 보려고 용산까지 찾아가기도 했으나 수입사가 수입을 중단한지라 교환은 못하고 이상없는지 점검만 하고 돌아 왔었다. 그 때문에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었는데 결국 다행히도 적당한 세팅을 찾아 내었다.
나중에 이 카드에 2배속 CD-ROM 드라이브를 달아 썼었는데 무려 50만원이 넘는 것이었고 설치 후 CD의 엄청난 용량(650MB, 당시의 대부분의 하드들보다 큰 용량)에 감동을 받았었다. 스타워즈 게임 CD도 샀었는데 그 게임을 하면서 화려한 그래픽에 놀라던 기억이 있다. 이 CD-ROM은 플렉스터의 전신인 TEXEL의 2배속 CD-ROM 드라이브였는데 당시의 최고속 제품이었다. 1배속 제품만 있던 시절에 2배속 제품이었으니 얼마나 빨랐겠는가! ^^
지금은 트레이가 일반적이지만 그 때는 대부분 CD 카트리지 방식이었다. 당시에는 CD-ROM 드라이브 조차도 구경하기 힘든 시절이었기 때문에 이 카트리지로 인해 재밌는 일도 있었다. 옆 연구실 선배가 스타워즈 게임이 재미있어서 가끔 와서 하곤 했는데 한 번은 내가 자리에 없을 때 와서는 CD를 어떻게 넣는지 몰라 한참 고민하다가 카트리지 위에 CD를 그냥 얹어 놓고 입구에 집어 넣어 버린 것이다. 그러니 될 턱이 없고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낀 선배는 꺼낸 다음 그냥 놔두고 가 버렸다. 나중에 내가 돌아 와서 게임을 하려고 하니 게임 도중에 CD를 못 읽는 경우가 발생했다. 하도 이상하길래 꺼내서 보니 CD 바닥에 엄청난 스크래치들이... ㅠ.ㅠ
대학원 시절에 여러 번 업글했던 또 하나는 바로 하드 디스크다. IDE 타입의 하드로 계속 늘려가다가 용량의 한계(그 당시 최대용량이 540MB였을 것이다)를 느끼고 SCSI로 가기로 결심. 자료를 조사하고 용산에 나가 Adaptec SCSI 컨트롤러(모델명 1542CF)와 1GB 하드를 사가지고 왔었다. 이 때 들인 돈이 대략 70여만원.. (휴~ 이거 글을 쓰면서 자꾸 나오는 액수가 지금은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금액이다.) 나중 일이지만 이 때 산 SCSI 컨트롤러 때문에 여러 기기들을 써 보게 되었다.
<계속>
[2007-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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